웹진 <이음>의 장기연재물 <돌아·가다>가 돌아왔습니다. 필자가 2009년 초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써온 이 글의 주된 배경은 2007년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이 글은 <돌아·가다>의 도입부이고, 일부는 지면으로 출간되었으며, 해당 출판사인 북노마드박종철출판사의 양해를 구합니다. [편집자 주]

<돌아 · 가다> 전편 http://2-um.kr/archives/category/column/doragada


<안내문>

10여 년 넘게 지났으니 성실했다고 해야 할지, 게을렀다고 해야 할지 스스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남저수지는 무척 변했다. 공원화사업 덕에 이제는 사색에 적합한 고즈넉한 장소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운동과 건강, 혹은 좀 더 멀리 사는 사람들의 나들이 명소가 되었다. 풀씨를 떼어내고 오리가족을 구경하며 쉬어가던 서어나무와 바위가 있던 자리에는 벽돌로 된 산책로가 깔렸다. 오른편 길에 있던 연리지도 도로 확장 공사와 함께 베어져 사라졌다. 이 저수지에 분수대를 설치할 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시간을 갖고, 놀랍게도 계속 찾아오는 오리 떼를 만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쓸쓸하게 흐뭇해하기도 한다. 영광상회의 주인들은 바뀌었고, 새로운 간판이 내걸렸다(하지만 ‘영광’이란 이름은 유지하여 ‘Glory Super’로 바뀌었으니 여전히 유서 깊은 가게인 셈이다). 널뛰기네 개들도 바뀌었는데, 바뀐 개들과도 친구가 되었고, 그들 중 한 녀석이 새끼들을 낳아 기르는 모습도 여러 번 보게 되었다가, 그들도 언젠가는 사라졌다.

 

 

 

혹여 누군가 여기에 적힌 풍경, 그러니까 여러 해 전에 담아놓은 공기를 확인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저 고요의 흔적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언젠가 하룻밤 묵으러 온 사람들 중 지면에 발표한 ‘오남저수지’를 읽은 이가 ‘생각보다 평범하다’며 다소 실망 섞인 표정으로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오남저수지는 평범했으며, 지금은 더욱 평범해졌다. 그는 고맙게도 내 마음속의 저수지를 보아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저수지 수위가 낮아진 어느 날엔가 사람들이 오가는 산책로 아래에서 낚시 장소의 돌 의자 따위가 고대유물처럼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고, 오남저수지 왼편 철마산 쪽 옛 산길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은 다른 의미에서 마음-발길을 멈추게 한다.

 

계절의 변화는 무수히 반복되었다. 그 사이 104년 만의 가뭄, 수십 년만의 폭염, 수십 년만의 대형 태풍이 소란을 피우며 지나갔다. 인류가 제아무리 잘났어도 아침태양을 떠밀어 올리거나 저녁태양을 끌어내릴 수는 없다. 그랬다간 모두 손바닥에 꽤 심각한 화상을 입을 것이다. 그나마 어떻게든 시간을 조종하겠다며 궁리해 낸 방법이 여름철에 손가락으로 고작 시침을 한 시간씩 돌려놓는 것이었다. 또한 분홍 벚꽃과 노란 벼가 함께 있는 풍경을 볼 순 없는 일이다. 시간은 돌릴 수도, 섞을 수도 없다.

 

이 글은 관광지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에는 무관심하다. 누구도 사라진 곳을 소개할 수는 없다. 10여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어쩌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과거 속 어느 시간과 영원 속 어떤 공간으로의 초대이다(글도 2009년 그대로).

 


#1. 저수지의 낮

참새들은 아침마다 소란스러운 조회를 열었다. 너무 흔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지 모르게 만들던 그들은 서로에게 간밤의 안녕을 묻고 그날의 일정에 관하여 제각각 수다를 떨었다. 벌레와 낟알을 공포로 몰고 갔을 참새들의 집회는 이제 거의 열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소규모 조별 모임 정도가 되었고, 그마저도 보기가 쉽지 않다. 아마 이 동네에도 참새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출근하던 아침이 있었을 것이다. 몇 마리의 참새만이 사라져가는 것들의 또 다른 대변자인 전신주에 들러 길을 찾곤 할 뿐이다.

 

저수지에도 참새는 흔치 않다. 대신 찔레꽃 줄기에 앉아있다 도망치는 화려한 빛깔의 작고 귀여운 새들과 수풀에서 날아오르는 꿩이 적막함을 깨운다. 저수지까지 올라오는 일은 드물지만, 주변 논과 개천에서 생업에 열중하는 백로들이 이따금 눈에 띈다. 외로워 보이긴 해도 다른 야생동물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겁 많고 내성적인 뱀과 맞닥뜨리기도 하고, 나뭇가지 위에서 부산떠는 다람쥐와 청설모를 훔쳐볼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공원에 사는 토끼를 볼 때와는 달리 대수롭지 않게 그들을 지나칠 수 있다. 가끔은 그들의 마을에 방문 허가증도 없이 불쑥 찾아와 일상을 번거롭게 만든 불청객이라도 된 것 같아 미안해지는 것이다.

 

반면 철새들에게는 덜 미안한 편인데,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방문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손님은 가늘고 긴 목을 내밀고 큰 날개를 점잖게 흔들며 아무렇잖게 저수지를 오가는 녀석이다. 날갯짓 몇 번으로 저수지를 종횡하는 그는 부메랑처럼 구부러진 저수지의 중간 부분에 떠 있는 작은 바위에 다리를 슬쩍 올려놓고 쉬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유유히 건너가곤 한다. 그 기품 있는 새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조류가 10만 종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다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어진 황새이다.

 

그러다가 얼음이 얼어 사람들이 상류 부근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썰매를 타는 계절에는 시베리아에서 온 겨울오리들이 떼를 지어 저수지를 차지한다. 대체로 심심해 보이지만 조를 짜서 물 위를 산보 하거나 얼음 위에 열을 맞춰 쪼그리고 앉아있는 꼴은 귀엽기까지 하다.

 

철마산과 천마산의 끝자락을 좌우 벽으로 삼고 있는 오남저수지는 그 산들에서 내려오는 두 줄기의 계곡물을 담아낸다. 이 지역은 지대가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먹구름이 바로 저만치 산에 걸려 물을 뿌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부감법으로 보면 중간이 휘어진 고대의 뿔피리 모양인 저수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천천히 둑을 타고 넘어오는 여름 새벽을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어떤 판타지 화가의 그림이나 영화 못지않게 신비롭다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양옆 산허리를 깎아 만든 길은 아침에 산책하기에 꽤 좋은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곳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생명체를 잡아 죽이는 심심풀이 같았던 낚시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예전보다 사냥이 줄어든 건 동정심이 증가해서가 아니라 사냥감이 감소해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사자가 남의 새끼를 물어 죽이고 개미 떼가 어린 새를 물어뜯는 것을 죄악이라 하진 않는다. 하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난 인간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개중에는 자신이 잘 즐기지 않는 것을 폄하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주장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저수지 낚시터에는 특유의 낙후된 공기가 있다. 추석 때 고향의 저수지 낚시터를 잠깐 둘러보면서 풍경과 시골 낚시꾼의 모습이 어릴 적과 너무 같아 놀란 적이 있다. 거기에는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졌다기보다는 시간에 뒤떨어진, 즉 시간이 정지해버린 공간이 있었다. 또, 조만간 재현되겠지만, IMF 시절에는 평일에도 몰려드는 낚시꾼들이 동네 청년들에게 우스개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것 이전에 작대기를 세워놓고 하는 일도 없이 종일 앉아있는 취미라니, 얼마나 한심한가.

 

하지만 낚시처럼 분주한 일도 드물다. 낚싯대 설치부터 꽤 수고스럽거니와 주기적으로 미끼를 갈아 끼워야 하고,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서 찌를 잘 띄워놓고, 계속 한 곳을 응시하는 작업이 쉬지 않고 반복된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체력전이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수중세계의 주민들과 필사적인 대결을 펼쳐야 한다. 밤을 지새우느라 곤히 자고 있던 불을 깨워 모닥불이라도 피우는 날이면 쉴 틈은커녕 차분히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뿐 만 아니라 풍류의 필수품이자 장시간을 버틸 체력을 유지해주는 술병이 쓰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낚시의 목적은 낚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사실 별다른 성과를 얻지도 못했다. 실력 탓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 증명되었다. 기타연주자이며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본인은 겸허하게 부인했지만) 낚시장인이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도 전혀 잡지 못했다. 그의 날카로운 분석에 의하면 베스 때문에 붕어가 없다는 것이다. 실은 한때 이곳에서 외지인들에게 요금을 걷으며 낚시터를 운영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민원이 제기되어 일을 접었고, 그에 대한 앙갚음이었는지 물고기들을 그물로 쓸어간 적이 있다. 이처럼 별다른 기대를 할 만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틈만 나면 조악한 낚싯대를 들고 저수지를 찾았으며, 영광상회의 노부부로부터 말을 놓아도 되는 익숙한 손님으로 인정받기에 이른 날에는 꽤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한적한 저수지에서 나뭇가지를 파라솔 삼아 흰 용 같은 천을 늘어뜨리며 느리게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는 시간은 평화 그 자체에 가깝다. 시간은 그렇게 다른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몇 밤을 자는 지로 시간을 재는 아이가 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동한다(충돌이라 하지 않아 다행이다)”고 하듯이 많은 것이 다르게 움직인다. 누가 보거나 듣거나 하지 않아도 저수지의 잎사귀들은 바람에 소리를 내고, 물속에 들어앉은 산은 소리 없이 출렁인다. 세상과 헤어져 자신을 만나는 시간은 정보량과 물적 접촉을 늘리는 일보다 값지다. 옛 성현들은 공통적으로 인지를 최소화하면서 무의식까지 내려가는 단계를 거쳤다. 거창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아무 말 없이 북적이는 뇌파를 가라앉히고 자신과 조용히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도시 속에 산책을 위한 공원이 많이 조성되면 될수록 도시인이 자연과 멀어졌다는 사실만 증명되고 있다.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수고를 던 대신 시커먼 먼지를 닦아내는 일과를 얻었다. 이 저수지 역시 꽤 변했고, 큰 건물이 들어선 만큼 키는 작아졌다. 소나무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술 한 잔 할 수 있는 카페는 분주해졌고, 동서 문명의 대리전이라도 벌일 듯 건너편에는 유럽형 건물들이 들어섰다.

 

2009년부터는 공원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어떤 공원사업도 그대로 두는 것보다 나을 수 없지만, 운하를 파겠다며 친환경 운운하는 수준의 작태까진 아닐 것이다. 청계천처럼 물을 퍼 올려 억지로 흘려보내는 인공조경을 친환경이라더니 아예 조경과 환경을 같은 말로 쓰는 지경이다.

 

다만 여름에 목부터 다리까지 긴 새가 찾아와 행여 중간에 쉬어가던 바위를 찾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우려는 훗날 현실이 되었다). 흰뺨검둥오리들을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섭섭함은 배가될 것이다. 지금도 그들이 문자를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긴 하다. 근처에 붙어있는 노란 간판엔 ‘오리들을 환영합니다’ 대신 ‘단호박오리’라고 적혀있으니까. 그래도 아직까진, 비록 시한부일 수도 있지만, 자연스레 휘파람이라도 불어 보답을 하고 싶어질 정도는 되어준다. 레퍼토리는 대개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에 수록된 곡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두 개의 오카리나를 구해 불긴 했지만 아무래도 입술이 휴대가 간편하다.

 

그런데 더욱 놀랍게도 그들은 돌아온다. ■

 

 

* 오카리나 바람을 불게 한 [대황하](1986)는 NHK의 다큐멘터리 <대황하>의 사운드트랙으로 일본 뉴에이지의 명작이다. 여러 해 뒤에야 첼리스트 장 필립 오딘과 만난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에고 모네나 등이 알려졌다. 자연의 소리와 신시사이저를 결합시킨 방식 자체가 상징적이었던 소지로의 [대황하]와 기타로의 [실크로드] 시리즈를 듣지 않고는 뉴에이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 이 건방진 말에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테고 들어본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 일본이 제작한 <실크로드>와 <대황하>는 이후 한국의 역사기행 다큐멘터리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역시 보지 않은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테고 본 사람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