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 – 2023년 3월] 이태원 참사와 윤석열의 법치주의

 

 

글 : 건수 (노동당 경기도당 집행위원)

 

 

사진: 경향신문, 한수빈 기자

 

 

이태원 참사가 100일 맞은 날 유가족은 이상민장관 퇴진의 요구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이상민 장관은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그를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 요구에 답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이상민 장관 탄핵안이 가결되자 의회주의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라며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이념이 법치주의라는 것은 모두가 알 테다. 문제는 법치주의가 향한 칼끝이 자기 진영 앞에서는 무뎌진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법이라는 보편적 규범에 대한 평등한 적용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법이라는 규범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힘을 빌려, 법에 의한 공평한 통치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치주의의 근간은 형평성이다. 자기 진영 앞에서는 법치주의의 칼날이 무뎌지고, 노동자와 같은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 앞에서는 날카로워지는 행보는 스스로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법치주의의 목표가 ‘법’을 통한 사회적 갈등의 해결이라 할 때, 왜 ‘법’을 수단으로 삼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법이라는 사회적 규범이 가지는 강제력이 권력을 심판하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이유가 있다. 즉, 법치주의는 시민의 준법정신 같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권력관계의 불평등으로 인해 통제받지 않는 기득권과 권력의 부정부패를 단죄하기 위해 사회적 규범이자 국가의 근간인 법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치주의는 권력자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은 법을 통해 통치를 한다고는 할 수 있어도,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태원 참사는 법적 책임의 문제가 아닌 정쟁의 영역이라 하며, 이상민 장관의 책임을 면피해준 윤석열의 발언은 법치주의를 완전히 왜곡하고 축소한 것이다. 안전재난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않았던 행정안전부의 책임이 곧 법적 책임이다. 법이란 세부적 조항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며, 헌법과 그 외의 법조항을 통해 법의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럴 때 안전재난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않은 이상민장관의 책임이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쟁의 영역이라는 발언은, 국민에 대한 안전보장이 행정안전부의 법적 의무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법은, 행정안전부는 왜 있는 것인가? 법치주의란 결국 보편에 대한 보편적 결정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안전예방조치도 없이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정쟁이, 아닌 상식의 회복이다.

 

 

노동자계급에게 국가는 모순적 존재이다. 한편으론 국가는 자본의 집행기구이기에 억압적 통치기구이면서, 개인의 이익만이 유일한 규범인 시장에 반해 사회 보편을 실현하는 공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런 맥락으로 법치주의 역시 노동자계급에게 모순적 존재이다. 다만 국가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보편과 상식을 파괴하는 오늘날 국가와 법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다시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단순한 안전참사가 아니다. 국가와 법에 대한 사회적 철학과 합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국가가 아닌, 보편과 평등을 위한 공적 공간으로서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정치투쟁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는 그것의 가장 분명한 전장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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