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안녕, 동지들

 

 

글 나도원(노동당 공동대표,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저기 철탑 위에 오르는 사람이 보이는가

내 마음보다 더 높은 다짐들

저기 망루 위에 서 있던 사람이 보이는가

내 눈물보다 더 뜨겁던 새벽을

저기 들판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보이는가

농부가 사는 저 시름의 마른 땅

저기 갯것 가자 부르는 구럼비가 보이나

이름을 가진 전부의 대답들

윤영배 <위험한 세계> 중에서

 

 

잔잔한 기타연주 위로 쓸쓸하고 나지막한 노래가 흐른다. ‘철탑’에 올라야 했던 노동자들, 용산의 ‘망루’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던 세입자들, 밀양송전탑에 맞서다 자신을 태운 나이 든 농부, 그리고 화약에 둘러싸인 구럼비의 모습이 이어진다. 새로운 세기, 21세기 첫 10여 년, 기술의 발달 덕에 사람이 편해지기보다 바빠지고 기계는 종일 일하며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의 일은 끝이 없어진 그때, 그동안에도 계속된 민중과 생명의 수난사가 아련한 선율과 짧은 노랫말로 함축되었다. 노래는 <위험한 세계>이고, 노래한 이는 윤영배이다.

 

윤영배 <선언>, 온스테이지

 


 

어떤 작사·작곡가, 치유와 안온을 노래하다

 

농기구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농부처럼 작은 기능 하나하나를 담은 선율과 사운드를 포개어놓는 음악에는 태도와 철학이 깃들어 있다. 글쎄, 이렇게 괜찮은 노래들을 나무를 베어와 밥 짓듯 부르는 음악인, 그것도 경력이 30년이나 된 음악인의 약력을 먼저 적어야 할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집, 그것도 EP를 데뷔 17년 만인 2010년에 조용히 내놓고, 2012년에 발표한 EP 《좀, 웃긴》이 두 번째 독집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고 어물쩍 넘어가 본다, 라고 쓰고 나니 ‘좀 웃긴’ 변명 같기도 하다.

 

윤영배는 1993년 제5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이한철을 반주자로 대동하고 참여하여 <겨울이 오면>으로 동상을 받는다. 이듬해에 MBC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게 된 이한철의 데뷔앨범에 작사가이자 조력자로 참여하며 프로의 길을 걷는다. 작사·작곡가 윤영배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앨범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가워할 이름들인 조동익과 이규호, 엉클과 나윤선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늘어갔고, 특히 장필순의 명작들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장필순의 대표작이자 대중음악사에서 명반으로 꼽히는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1997)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자리에 놓일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윤영배는 조동익과 함께 섬세하고 다채로운 음악의 결을 새겨 넣었다. 일상의 아름다움부터 생태적 생활관 그리고 삶을 성찰하는 메시지가 아름다운 선율과 장필순의 허스키한 음성에 실려 나왔으며, 명곡이 지녀야 할 거의 모든 덕목을 품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그리고 성찰하는 포크와 모던 록이 조화를 이룬 곡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역시 조동익과 윤영배 그리고 장필순 체제로 열매를 맺은 《Soony 6》(2002)도 또 하나의 걸작으로 새로운 기법의 실험과 아련한 정서의 복원이 한 몸을 이루었다. 바로 이 순간들을 윤영배의 곡들인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와 <스파이더맨>, 그리고 <헬리콥터>와 <동창>이 함께 만든다.

 

사실 그는 ‘하나뮤직’ 소속 음악인들이 함께 한 컴필레이션 《바다》와 《겨울 노래》를 통하여 <외로운 이층집>과 <길들이지 않은 새>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나 소수만이 그 이름을 기억했고, 그보다 훨씬 소수가 비로소 태어난 그의 솔로 앨범을 반겼다. 데뷔작이랄 수 있는 《이발사 – 바람의 소리》(2010)는 당시 모 포털사이트의 음악 메뉴에서 형편없는 평을 받았지만(평론이 형편없었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가다듬은 내공과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를 떠올리게 하는 감각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세계관과 음악이 차분히 만난 작품이었다.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는 당대 상황과 가치를 반영한다. 새로 짓는 기차역들은 쇼핑센터의 한 코너로 지어지고, 혐오시설은 특이시설로 포장된다. 그건 어딘지 윤리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본·국가권력이 뿌려놓은 낙하산의 낙착지점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노동자로, 지식인으로, 운동가로 자신을 확정했던 사람들은 너무나 많아진 호명처와 뒤섞인 위치 덕분에 존재의 근거인 정체성을 잃고 실향민처럼 과거를 추억하는 데에 머문다. 그들 중 일부는 비평가나 수집가로서 컴퓨터 앞에 앉거나 스마트폰을 쥐고서 냉소를 리트윗하고 있을 뿐이다.

 

속도를 내려 애쓰고, 명망과 권력을 지향하고, 특별시민으로 남으려 발버둥 치며 세상을 탓하면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버려진 몽당연필들의 낱낱을 기억하며 시대를 직시하는 무거운 걸음은 간절하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다가 그냥 돌아왔다가, 제주도로 들어가 살다가, 약한 이들이 위기에 처한 서울 신촌의 두리반과 용산 해방촌 그리고 팔당의 두물머리를 오간 윤영배는 저마다의 속도를 거스르고 자본의 속도에 따르라는 강요에 대항하는 ‘키 큰 나무’로 돌아온다.

 

 


 

그러다 불온을 노래하다, 위험한 세계를

 

《좀 웃긴》(2012)은 팽팽해진 긴장이 감돌면서도 여전히 편안했다. 음악과 삶에 대한 철학이 들리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 도대체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물음이 2013년에 제대로 발표한 정규앨범 《위험한 세계》 안 종이들을 (그가 사는) 제주도의 풍경 사진이 채우고 있지만 정작 노래들은 목가 풍의 낭만을 품고 있지 않은 이유를 말해준다. 첫 번째 노래 <자본주의>가 시작하자마자 투쟁가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음악에, 에두르지 않고 하고픈 말을 직설하여 얹어버린다. “몇몇 사람의 난폭한 결정,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이루어진 <구속>에선 “흔한 사람이 투사 되고 열사 되는, 흔치 않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아련하게 읊는다.

 

너무 복잡한 국가와 시장의 작동방식은 대기업와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처럼 계급 분열을 유도한다. 계급투쟁에서 계급 ‘인식’ 투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나왔으면서 곡은 아름답고 연주는 새롭기까지 한 <선언>이 다른 세상을 소망하며 “나와 같은 생각이 온 세상에 가득 차 넘치는 날”이라 노래하는 절실함은 누군가의 마음속 페달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안녕 그대들, 동지들

 

‘도둑처럼 올 줄 알았던 시대를 도둑에게 빼앗겨버린 시대’, 소중한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삶과 태도의 일치만이 아니라 음악다운 매력도 놓치지 않는 음악인들이 있어야 한다. 느리고 가볍게 사는 삶을 표현하고 자연을 포착하기 위하여 새의 하품 소리와 눈이 쌓이는 소리와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이 돋는 소리를 애써 수집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음악과 예술이 있으면 된다. 한 해 동안 101만 마리의 소와 1,856만 마리의 돼지 그리고 6,016만 마리의 오리와 7억 8,912만 마리의 닭이 도축되는, 이런 세상에 살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좀 더 덜어내고 좀 더 기다리며, 좀 더 둘러보는 편이 낫다 싶을 때가 있다면, 자작나무 군락지 같은 공기를 품은 “시무룩한 노래들(윤영배 본인의 표현)”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윤영배는 2014년 초에 열린 제2회 ‘레드어워드’(노동당 주최,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주관)에서 ‘음악’ 부문 상을 받는다. 이어 권위 있는 2014년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음반’과 함께 ‘최우수 모던록 음반’, ‘최우수 모던록 노래’를 휩쓸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이륜차를 몰고 세계에 재앙을 몰고 온 파에톤의 거침없는 질주와 탈선, 그 자본의 자유가 맺은 쓴 열매를 건네받아 맛보고 숙면을 강요받는 세상, 돈에 지배당하는 위험한 세상,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불안감에 불안해하면서 피해의 최소화가 가능할 뿐 피할 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 시장논리가 강력한 대중예술 분야에서 자본과 관성에 순응하는 세상, 그러나 보시다시피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2009년 1월 새벽에 ‘용산’을 ‘칼라TV’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앨범이 발표된 바로 다음 해인 2014년 4월 아침에 또다시 ‘세월호’를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이다. 기억은 선택되고 왜곡되며, 예언도 시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런데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중요하고, 역사 또한 현실을 선택함으로써 각성해왔다. 역사란 그날을 기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시작한 <위험한 세계>가 2절을 지나 마지막 후렴구에 이르면, 악기들이 저마다 절절하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때 들리는 “안녕”은 이별 인사만이 아니다. 더 간절한 인사, 부디 “안녕”하라는, “안녕”하자는 안부이다. 그 인사의 대상은 언젠가 ‘철탑’에 오르고 ‘망루’에 오르고 ‘들판’에 서게 될 사람들, 언제나 차갑고 뜨거운 아스팔트에 서는 사람들, 이 멋진 21세기에 아무런 일도 아닌데 철창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동지들”이다.

 

 

철탑도, 타는 망루도, 지친 농부도, 취한 슬픔도

고르게 곧게 바르게 환하게 넓게 정의롭게

안녕, 안녕 그대들, 동지들

안녕, 안녕 그대들, 동지들

윤영배 <위험한 세계> 후렴구

 

 

윤영배 <위험한 세계>, EBS 스페이스 공감

 

 

※ 윤영배는 진보신당-노동당의 당원이었고, 이후 녹색당원으로 <녹색당가>를 만들었다. 2015년 제3회 ‘레드어워드’ 시상식에 축하공연자로 무대에 올랐으며, <위험한 세계> 등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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