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2000년대의 허클베리 핀]

 

[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인디음악 1세대 허클베리 핀25

 

 

나도원(노동당 공동대표,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의 공연을 처음 본 때는 1998년, 어느 대학교 노천극장에서였다. 당시 무명 밴드 활동을 하던 터라 나중에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서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공연을 몇 번 보았는지 꼽기엔 손가락이 한참 부족해졌고, 주로 공연을 기획하여 그들을 무대에 세우곤 했으며, 어느 날엔 <불안한 영혼>이 대기 속에 스며드는 하늘을 기억에 남겨두게 되었다. 긴 시간, 인디음악계의 세대교체 속에서도 그들은 건재했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오늘 한국 인디음악의 흐름과 궤를 같이해온 그들의 음악-발길을 정리해보려 한다.

 

 

 

 


 

첫걸음, 독보의 시작

 

1990년대 중후반은 이전과 다른 음악 조류와 활동 방식이 왕성하게 분출하던 때이다. 인디음악이다. 1997년에 결성한 ‘허클베리 핀’은 이기용(기타, 보컬)과 남상아(보컬, 기타) 그리고 김상우(드럼) 삼인조로 데뷔앨범 《18일의 수요일》(1998)을 발표한다.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의 대중적 감성, ‘크라잉넛’의 원초적인 펑크와는 다른 분위기와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강렬한 <갈가마귀>, <불을 지르는 아이>, <죽이다> 등을 수록한 《18일의 수요일》은 노이즈와 그런지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여 거칠고, 불길했고, 우울했다.

 

 

 

‘허클베리 핀’은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음악계 전체에서도 존중받아 마땅한 음악인들로 성장해간다. 정제한 화법과 강렬함이 공존하는 《나를 닮은 사내》(2001)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라인업이 대폭 바뀌어 이소영이 새롭게 보컬과 기타를 맡고, ‘허벅지밴드’와 ‘이발쑈포르노씨’에서 활동한 김윤태가 드럼연주자로 합류한다(남상아 등은 이후 ‘3호선버터플라이’에서 활동했고, 이기용과 이소영 그리고 김윤태는 이때부터 오랫동안 밴드를 함께 지켜간다.)

 

 

 

‘허클베리 핀’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칠해진 이 앨범에서 섬세한 악기 연주와 바이올린의 활용 등 탐미 성향을 강화한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 앨범들은 물론이고, 이기용의 프로젝트인 스왈로우(Swallow)에서 심화한다. 밴드의 리더인 이기용 특유의 기타 리프와 아르페지오가 현악과 함께 수려한 무드를 조성하는 <Somebody To Love>와 <Em> 그리고 <길을 걷다> 등 뛰어난 곡들로 채웠으며, 피부 위에 작은 돌기들을 만들어내는 명곡이자 밴드의 대표곡이 될 <사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 번째 앨범 《올랭피오의 별》(2004)은 젊은 비평가들의 지지와 마니아들에게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고, 밴드의 입지를 확고히 한 작품이다. ‘어딘지 마이너스러운 이들의 고집스러운 지지’가 공감과 동조를 불러온 기점이다. 흥겨운 <I Know>와 서정성 깊은 <Hey Come>을 아우르면서 정갈함과 사색을 담은 이 앨범은 《환상… 나의 환멸》(2007)과 함께 ‘허클베리 핀 스타일’의 정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완성과 절정기

 

역시 앨범의 표면부터 노란색이 선명한 《환상…나의 환멸》에는 절망과 고독 그리고 허무의 정서가 짙다. 그러나 패배주의적이거나 냉소가 아닌, 공격적인 절망이며 뜨거운 고독이다. 선율보다 리프와 리듬을 강조하는 정통 록의 어법을 강조했는데, 초기의 모습을 상기해본다면 이러한 거침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기용이 즐겨 썼던 단어인, ‘뇌’를 괴롭혔을 고민과 몇몇만 알고 있을 회유에도 불구하고 타협을 거부하겠다는 입장표명이었다. 이기용은 진정성 있는 음악창작자이며 훌륭한 작사가로 소개받지만, 그 이전에 인상적인 리프를 뽑아내는 기타 연주자이자 록 음악인이다. 앞서 발표한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 ‘스왈로우’의 《Aresco》(2005)에서 장점으로 작용한 이러한 면모가 《환상…나의 환멸》의 전면에 나섰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다양한 붓질이 다양한 채도의 색을 여러 번 덧씌우면서 풍성한 하나의 색감을 만들었다.

 

 

다섯 번째 정규앨범 《까만 타이거》(2011) 역시 ‘허클베리 핀’의 절정기였으며, 함께 한 음악인들의 면모로 보나, 당시 활동상으로 보나 그러하다. 특히 또 하나의 명곡인 <빗소리>를 수록하고 있다. 이 무렵에 대해선 차라리 라이브 앨범을 앞에 두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우리 대중음악계에 라이브 앨범이 적은 이유가 있다. 히트송이 많아야 하고, 장소와 기술과 같은 환경이 적절해야 한다. 판매량도 예측 가능해야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인디음악 쪽에선 과감한, 혹은 무모한 시도가 더욱 적을 수밖에 없었다. ‘허클베리 핀’ 역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어떤 장르를 좋아한다고 해당 장르의 모든 음악인을 좋아하지 않듯이, 좋아하는 밴드라고 음반까지 모두 좋아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공식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으니 《Huckleberry Finn Live》(2010)이다.

 


[사진 – 2009년의 허클베리 핀]

 

 

여러 염려가 뒤따랐지만, 우선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밴드의 베스트 앨범인 동시에, 동시대 음악의 최일선에 있는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한 기록물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라이브 앨범을 녹음한 공연에서 다음 정규앨범에 실릴 <빗소리>가 현장에서 발표되었다. 처음 듣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코러스와 선동적인 외침은 과거의 무거운 걸음이 역동적인 현장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당시 정식-세션 멤버들의 구성, 즉 이기용, 이소영, 김윤태 그리고 고정 세션 역할을 한 루네(건반), ‘한음파’의 장혁조(베이스) 등의 라이브 에너지는 최상이었다.

 

* (드러머 김윤태는 이후 ‘허클베리 핀’을 떠나 ‘한음파’와 수퍼스트링(SuperString)에 주력한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키텍쳐(Arkitekure)에서도 활동하는데, 2022년 말에 발표한 정규앨범이 세계 곳곳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길을 낸, 솔로 프로젝트

 

이기용은 솔로 프로젝트 ‘스왈로우’에서도 시대와 조류에 구애받지 않는 동시대성을 만들어간다. ‘허클베리 핀’에서는 저변에 비관과 비판을 깔고 있는 이기용의 곡과 삐딱하지 않고 정직하게 노래하는 이소영의 노래가 묘한 긴장을 자아냈고, 독특한 성격을 이루었다. 이기용이 직접 노래하는 ‘스왈로우’는 단지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의 차이를 넘어선다. 그동안 증오와 분노 그리고 경멸과 냉소 사이쯤에 자리하고 있었다면, 물론 문득 바람에 머리가 시려오게 하는 <Hey Come>과 같은 곡들도 있었지만, ‘스왈로우’의 《Sun Insane》(2004)과 《Aresco》(2005)는 공격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을 부추기지 않는다. <봄의 피로>와 <몇 세기 전의 사람들>, <Three Seasons>와 <내가 너를 따라 간다면>, <너는 웃지 않고 난 웃었어>와 <밤은 낮으로>처럼 근사한 곡들이 줄줄이 세상에 나왔다.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의 마지막 수상작이 발표되자 장내에는 색다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최고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앨범’의 주인공은 《Aresco》와 ‘스왈로우’였다. 앞서 ‘올해의 모던 록 앨범’까지 한 개의 트로피를 들고 있던 터였다. 중심에서 빗겨서 있었던 것 같았던 이기용은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음악은 스스로 중심이 된다고 믿어왔다.” 논쟁적 대상을 비로소 공인(共認)의 대상으로 만든 이 앨범은 지금도 저녁 냄새를 품고 있다. 이어 발표한 ‘스왈로우’의 세 번째 앨범 《It》(2009)은 이때까지 발표한 앨범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났으며, 세계에 대한 사유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특유의 탐미적 서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특히 “사람”과 “바람”이 각운을 만드는 <두 사람>은 자주, 그리고 오래 듣는 곡이 되었다.

 


[사진 – 2020년대의 허클베리 핀]

 

 

 

계속 경계를 넘어

 

허클베리 핀의 노랫말 속에는 치열한 현실을 숨겨둔 비현실적인 은유가 가득하다. 이런 수수께끼는 각자의 해석에 내맡겨질 운명이다. 비효율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은폐된 것을 주체적으로 찾아내어 이해할 때 그 메시지를 덜 비판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효과가 있으니 오히려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에 앞서 곡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기에 수수께끼일 수 있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노래 중 여럿에는 좌파혹은 사회비판 메시지가 감추어져 있다. 혁명가의 고뇌와 빨치산을 은유한 <사막>, ·영 제국주의를 비판한 <두 사람>, 북녘을 그린 <휘파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갈구하듯 노래하는 푸른 바다 높은 탑 젖은 몸의 은유와 트럼펫 연주가 만난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은 세월호를 그린 곡이다.

 

 

수작을 연이어 발표했지만 ‘허클베리 핀’은 거처를 제주도로 옮기고 긴 침묵에 들어간다. 호평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악시장은 창작자들을 끊임없이 생존과 결정의 경계로 내몰았다. 그들은 제주 어느 바닷가에 음악 작업실과 함께 여행자 숙소, 카페를 운영하며 지냈다. 그렇게 지낸 수년간의 제주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발표한 앨범이 《오로라피플》(2018)이다. 이기용, 이소영, 성장규로 재정비한 밴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감성과 사운드를 담았고, 자연과 바다의 기운을 포스트 록의 기법을 응용하여 풀어냈다.

 

 

그리고 다시 로킹한 사운드로 복귀한 일곱 번째 정규앨범이 《The Light Of Rain》(2022)이다. 동시대 음악 화법을 시도하고, 기후위기 메시지와 신조류 사운드 그리고 리프 중심 연주를 통하여 부조화와 이중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1980~90년대 가요-팝 분위기를 숨기지 않기도 한다. 20세기 멜로디와 21세기 사운드를 버무린 곡들을 품고 있다. 그래도 여러 면을 종합할 때에 가장 명료한 인상을 남기는 곡은 베이스가 미끄러지듯 문을 열고, 기타 리프가 주도하는 ‘허클베리 핀 스타일’에 일렉트로닉 루프를 조화시킨 곡이자, “In The Moonlight”이라는 코러스로 회고와 반추의 정서를 품은 <Tempest>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세계들의 만남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다”고 했다. 경제적 상하, 정치적 좌우의 세계를 포함한 말이었다. 그리고 “열정을 갖고 하되 아주 차갑게, 내 몸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그만큼의 세기로만 표현한다는 원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 했다. 또 “20대에서 30대 초반의 결과물이 자신의 베스트가 되어버리고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다면 치욕스러울 것 같고, 그렇지 않은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2007년에 직접 진행하고 기록한 인터뷰의 일부이다.

 

 

오래전부터 ‘허클베리 핀’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기 위하여 기꺼이 위험과 왜곡을 감수해왔다. 그건 소와 바꾼 잭의 콩과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레이블을 만들어 스스로 앨범을 제작했고, 스스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스스로 공연을 기획했다. 이것이 인디뮤직(independent music), 즉 ‘독립음악’의 본연이다. 그러했기에 지금도, 여전히, 한국 인디음악의 대표자 중 하나로 ‘허클베리 핀’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콩나무는 계속 자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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