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인신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기후위기 대응 투쟁을 하며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무기력감이다. 막막함이다. IPCC 6차 보고서를 비롯해 세계 유수 연구진이 발표하는 데이터는 참담했다. “지금당장 기후정의!”를 외쳤지만 기업과 정부는 꿈틀대는 척만 하고 제대로 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를 시작했다. 8월 24일 목요일 오후 1시 3분이었다. 기후위기 하나만 보고 달려가도 재앙을 막을까 말까한 시점에서 기후운동을 하는 우리 모두를 절망으로 끌어 내리는 일이다. 시민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엄습했다.

 

인류는 자연에 속해 있던 에너지원에서 벗어나 인간의 손으로 핵분열을 개발해 무기를 만들었고, 지금은 전기 생산에 쓰고 있다. 자연생태계는 인간으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양의 방사성 물질을 품게 되었다. 그 결과 아직 인류가 통제하지 못 하는 핵폐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핵산업을 옹호하는 이들은 핵발전소 사고가 인간의 실수, 재연재난, 기계결함만 없으면 수십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나니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말장난이다.

 

 

이미 기계 결함으로 쓰리마일 섬(1979년)에서, 인간의 실수로 체르노빌(1986년)에서, 자연재난으로 후쿠시마(2011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우린 아직 이 사고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 하고 있다. 백 년도 아니고 32년동안 세 번의 사고가 있었다면 사고확률의 분모는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피해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면 분자는 무한에 가깝게 늘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핵발전은 수 십만 분의 1 확률로 발생하는 안전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백퍼센트가 넘는 확률과 피해를 입히는 재앙의 씨앗인 셈이다.

 

다행히 시민사회단체는 오래 전부터 핵발전의 위험을 알리고 시민들과 호흡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역량이 이제는 핵오염수 해양투기 대응에 쓰일 차례다. 어쩌면 우리가 찾기 힘들던 희망은 우리 안에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희망은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수원은 56개 단체가 모여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수원공동행동을 결성했다. 거기엔 수산협동조합 상인들도 참여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조직도 있고, 역량도 모였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한 방울의 오염수라도 바다에 덜 버리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핵발전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는 어쩌면 탈핵사회로 가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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