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금] 시민이 만든 공공병원 시민이 지킨다

 

 

글: 정인열(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홍보국장, 월간 <작은책> 일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화장실을 안 고치는 이유

 

축구선수 박지성이 뛰었던 EPL 명문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있다. 최근 이 팀은 부진을 겪고 카타르 자본 등 타 자본으로 인수 논의되고 있었는데, 논란이 된 사진이 있다. 남자 화장실에 오줌이 넘쳐서 오줌 바다가 된 모습이었다. 설비가 낙후됐지만 현 경영진은 보수를 안 하고 방치한다. 축구 전문 패널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곧 매각할 거니까 안 하는 거라고.

 

 
[사진 설명- 명문 구단 맨유 화장실. 매각 국면이라 보수를 안 한다고 한다. ]

 

 

 


○ 신상진 시장의 대학병원 위탁추진과 정상화 방기

 

맨유 사태를 보면서 성남시의료원이 떠올랐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2022년 7월 취임 후 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 위탁)을 모델로 하는 대학병원 위탁 운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1년 넘게 원장 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 성남시의료원 위탁운영 반대·운영정상화 시민공동대책위원회(이하 성남시의료원시민공대위)는 지속적으로 ‘공공의료 철학과 경영 능력이 검증된 의료원장을 조속히 채용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시는 임원추천위만 구성했을 뿐, 채용 공고를 내지 않았다. 더욱이 신상진의 말 때문에 현재 의사 정원 99명 중 55명만 남아있다. 의사들의 이직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의료진 채용 공고는 극소수 인원을 형식적으로만 낼뿐, 실제 채용은 방기하고 있다. 신상진 시장이 의료원을 대학병원에 위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사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문 축구구단이 매각 국면에 들어서자 화장실을 안 고치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 성남시의료원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성남시의료원, 전국 최초 주민조례 운동으로 설립된 공공병원

 

 

성남시의료원 설립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3년, 성남시 구 시가지에 위치한 수정·중원구의 인하대병원이 폐업을 하자 당시 보건의료노조 인하대의료원지부 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어 폐업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투쟁은 보건의료노조의 구호 ‘돈보다 생명을’에 맞게 공공병원인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으로 전환된다. 2003년 12월 시민 18595명의 참여로 성남 최초로 주민발의 조례를 접수했다.

 


[사진 설명 –  인하병원 폐업반대 투쟁은 성남시립병원 설립 주민조례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2013년 11월 착공, 2020년 7월 513개 병상의 종합병원으로 개원하기까지 벽돌 책 한 권 나올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노동조합·진보 정당의 운동도 작은 사안 하나하나 쉽지 않듯이, 시민이 주도한 공공병원 설립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원이 설립되자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2015년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으로 단체를 전환하고 약 80명의 회원들과 함께 성남시의료원 운영·감시·시민참여와 시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조직으로 출발한다.

 


[사진 설명 –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임원들(소속 정당은 모두 노동당, 진보당, 정의당으로 각각 다르지만 손발이 잘 맞는다).]

 

 


○ 지방의료원과 대학병원은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

 

성남시의료원은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서 1차 의료기관과 주변의 상급종합병원과 협력해 지역주민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고 건강 수준을 높이며,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병원과는 역할이 다르다. 성남시의료원이 위탁된다면 건강 불평등 해소도 요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장애인 치과, 발달장애인 행동발달증진센터, 호스피스 완화 병동까지 선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진료들도 축소되거나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 성남의 건강 불평등

 


[사진 설명 – 2023년 성남권 보건의료 핵심지표]

 

분당 vs 수정·중원구 심각한 의료격차

 

– 분당구 5위, 중원구 98위, 수정구 69위. 이는 지역별 건강수명 순위(한국건강증진개발원, 2020년 기준)다. 같은 성남 관내라도 저소득층이 밀집된 수정·중원구(본 시가지) vs 분당구의 격차는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 인구 10만 명당 중환자실(성인소아) 병상수 역시 분당 45, 수정 17.8, 중원 0으로 심각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자료 : 2023년 성남권 보건의료 핵심지표). 수정·중원구 합쳐도 분당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 국내 최고 수준의 장애인 치과도 운영 위기

 

성남시의료원의 장애인 치과는 타 대학병원(보통 6개월)에 비해 대기 시간이 2~3배 적고, 비용 또한 저렴하다. 공공병원이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병원 및 의원에서는 수익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있더라도 진료 수준이 성남시의료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담당 교수는 장애인 치과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인데, 위탁 논란 후 의료원에서 실적을 압박하고 협진 의료진 역시 이직으로 운영 위기에 처해있다. 담당 교수는 대학병원 위탁 시 본연의 기능은 축소되거나 상실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대학병원 위탁하면 좋아진다는 신상진의 주장, 왜 거짓인가?

 

첫째, 성남시의료원은 보라매병원처럼 (분당)서울대병원 위탁이 불가능하다. 성남시의료원은 지방의료원법의 지배를 받고, 보라매병원은 서울시 조례의 지배를 받는다. 설사 위탁하더라도 지방의료원법 역할을 수행(복지부 운영평가 등 각종 평가 시행, 성남시의회 감사 및 예산통제 규정 준수 등등) 해야하는데, 교육부 소속의 서울대병원이 이를 수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의사 부족은 의료계 핵심 문제이며, (분당)서울대병원 역시 자체 인력조차 부족한 실정으로 위탁 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직접 파견할 여력이 없다. 신상진 시장은 대학병원의 경험 많은 교수와 레지던트를 수급받아 대학병원급 진료를 구현하겠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실제로 불가능하다.

 

셋째, 공공병원이라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위탁’ 운운하는 순간부터 의사 이탈은 시작됐다.

 

넷째, 적자가 크기 때문에 위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시 스스로 대안을 내놓았다. “의료원의 설립주체인 성남시가 진료비를 통제하고 적자 발생 시 이를 부담하는 구조”, “우수한 의료진으로 충원되고 시민들이 원스톱진료와 고품질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면 적자가 나더라도 그 규모는 적을 것이며, 성남시에서 모두 부담할 것” (https://m.snvision.newsa.kr/16407) 이라고 시정 소식지를 통해 밝혔다. (이럴 거면 뭣하러 위탁을?)

 

다섯째, 시는 뇌졸중·심혈관질환 응급 진료와 수술이 어려운 구조기 때문에 위탁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은수미 전 시장 때부터 지적되어온 경영진의 능력 부족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신 시장의 위탁 추진이 의료원을 급격히 고사시키고 있다.

 

 


○ 성남시의료원 정상화는 신상진 시장의 의지에 달려있다

 

첫째, 위탁추진을 당장 중단해 의료진 이탈을 막아야 한다.

둘째, 우수한 의료진을 충원해야 한다. 특히 중증 환자, 난이도 높은 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진 채용이 핵심이며, 전문의 인력은 100명~150명 수준이 적합하고 이런 조건을 갖췄을 때 인턴-레지던트-수련의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셋째, 성남시의료원은 공공병원 중 입지가 가장 좋은 곳이다. 강남에서 가깝고 설비도 최신식이다. 공공의료 전문가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은 곳으로 성남시의료원을 꼽았다. 병원이 안정되면 우수한 의료 인력 수급은 충분히 가능하다.

 

 


○ 시민이 만든 공공병원 시민이 지킨다 – 성남시의료원시민공대위 활동

 


[사진 설명 – 지난 8월 4일 성남시의료원 개원 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신상진 시장이 대학병원 위탁을 언급한 직후인 2022년 8월, 성남시민행동은 지역사회에 연대체 구성을 제안했다. 노동당 경기도당을 비롯해 15개 시민단체·진보정당·노동조합이 모여 성남시의료원 위탁운영 반대·운영정상화 시민공동대책위원회(이하 성남시의료원시민공대위)를 꾸렸다. 성남시의료원 구성원으로는 보건의료노조 성남시의료원지부와 성남시의료원의사노조가 결합하고 있다.

 

각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노동조합은 개개인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또 자신들의 조직 현안들을 안으며 결합하고 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서로가 신속하게 손발을 맞춰 대응해, 2022년 10월 성남시의료원 위탁 운영을 강제하고 범위도 민간법인으로 확대하는 개정조례안을 막아내는 성과를 이뤄냈다.

 

지금까지 총 22차 회의에 워크숍, 사안 사안마다 기자회견과 퍼포먼스, 시민 선전전, 집회, 1인시위 등 다방면으로 투쟁해 왔다. 지난 5월에는 현재 성남시의료원 사태의 책임이 신상진 시장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신상진 직무유기 고발 및 퇴진 선언을 했으며, 총선을 앞두고 신상진과 지역구 국민의힘 시의원 주민소환 운동을 결의하고 준비 중이다.

 


[사진 설명 – 지난 5월30일 수정경찰서 앞에서 열린 신상진 시장 직무유기 고발, 퇴진운동 돌입 기자회견]

 

각 단체의 이해관계와 내부 역량도 다르기 때문에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남시의료원 설립 운동만큼이나 지난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 마무리 – 어느 대리운전 노동자의 말

 

지난봄 성남시민행동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양미화 전 대표님과 동승 해 대리운전을 불러 집에 가면서 성남시의료원 문제에 대해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집에 다 도착했을 즈음, 대리운전 기사님이 말했다.

 

“신상진 그 X 사기꾼입니다. 성남 사람들은 다 신상진 안 믿어요. 겉으로는 서민들 위한다고 하는데 속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오래전에 대우자동차판매지회 노조원이었습니다. 그때 정리해고 투쟁한다고 전국을 다 다녔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압니다. 의료원 넘긴다고 하면 다 반대할 겁니다.”

 

성남시는 시정 소식지, 주민자치위 등 관변 단체를 총동원해서 위탁 여론을 만들고 있다. 그에 비하면 시민공대위는 바위에 깨지는 계란 같기도 하다. 하지만 20년 전 인하대병원 폐업 반대 투쟁으로 성남시의료원 설립의 발판이 된 역사가 있다. 대우자동차판매지회 투쟁을 경험한 노조원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 했지만 대리운전 노동을 하며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투쟁을 경험한 노동자의 한사람으로, 박재만 동지에게 받은 농성장 한방진료의 빚을 갚기 위해 합류했다.

 

물론 2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시민과 노동자와 진보정당의 결집은 많이 와해됐다. 그래서 그만두나? 그렇지 않다. 외면할 궁리보다는 나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탠다. 지금은 시민의 역할로 또 뚜벅뚜벅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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