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건수 (노동당 경기도당 집행위원)

 

 

최근 국가보훈처가 보수진영이 추앙하는 이승만과 백선엽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작하며 때아닌 역사논쟁이 시작되었다. 부정부패와 부정선거를 일삼다 혁명을 피해 도망간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건국이념의 아버지로, 백선엽은 친일파 출신 군인에서 전쟁영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반북, 반사회주의다. 특히 백선엽이 간도특설부대에서 활동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자손들은 백선엽이 간도특설부대에서 토벌한 것은 사회주의 진영의 독립군이었으니 친일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6년 전에도 대통령을 탄핵시키며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보여줬던 한국사회가 이미 수십 년 전에 하야한 이승만을 건국의 대통령으로 추앙하게 된 것 역시 반공주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했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황당한 역사논쟁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이를 국가보훈처의 과도한 대통령 충성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보긴 어렵다. 시각을 국제적으로 넓혀보면, 이미 세계자본주의는 곳곳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반격에 직면했다. 기후위기를 기점으로 폭발한 새로운 좌파사회운동의 기세가 몇 년 전에 비해 사그라진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자유세계의 경찰을 자임했던 미국에서 젊은이들 대다수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그 얼마나 충격적이겠는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처참한 정치현실이 과거의 기억을 흐릿하게 했을지라도, 불과 6년 전 거대양당구조를 지탱하던 극우정당의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 정당은 정치적으로 파산했다.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 후진적 정치제도와 같은 케케묵은 사회개혁의 의제들이 전 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이를 국제적 좌파사회운동의 급부상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세계자본주의와 정치적 극우주의는 오랜 지배의 끝에 거대한 반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역사논쟁’을 보면 이제 반격은 좌파가 아닌 우파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있던 이승만과 백선엽을 끌어와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하며 역사논쟁의 공론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역사논쟁은 현대판 ‘빨갱이 사냥’이다. 북한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한 역사적 인물을 국가영웅으로 대접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 때에 부정선거로 집권을 연장하려 한 독재자 이승만의 면모는 감춰지거나 합리화 되고, 친일파 백선엽은 사회주의자들은 토벌한 ‘찐’ 자유민주주의자라는 신념의 인물로 변모한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독재자와 친일파를 국가적 영웅으로 섬기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다. 이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는 어디에 있었을까. 의도가 무엇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는 한국사회 기득권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었다. 부동산은 곧 자본인데, 자본의 특성은 스스로 확장한다는 데에 있고 자본이 많을수록 확장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주택이 많을수록 담보대출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고, 담보대출이 많을수록 구매할 수 있는 주택의 양이 늘어난다. 즉 시장에서 더 유리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주택자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물리고 심지어 집값을 내리겠다고 하니, 직접적으로 재산의 피해로 나타났다. 그들은 이를 두고 사유재산권의 침해라고 말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를 북한과 엮고, 사회주의 정부라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프레임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들이 느끼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으로 재산상의 피해를 보았으니, 흡사 해방 정국 당시 부자들의 부를 정의의 이름으로 압수한 북한정권의 생각이 나지 않았겠는가.

 

어쨌거나 매일같이 현안이 생기며 정신없는 오늘날 한가하게 역사논쟁이나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러나 죄는 집주인이 저질렀지만 책임은 세입자가 다 져야 하는 전세사기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가는 오늘날, 사유재산의 수호신을 모시겠다는 저들의 추악함은 그저 한가한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섬뜩하다. 이들이 걸어오는 역사논쟁의 끝이 과연 몇몇 인물의 복권일지, 아니면 가질수록 유리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부자들의 천국일지는 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그 반대로 전태일과 윤상현의 동상을 세우면 되는 문제일까. 이미 지나간 역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써내려갈 역사도 중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들 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만들어낼 때, 역사도 바뀔 것이다. 역사논쟁에 한가하게 역사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오늘도 바쁘게 역사를 열어가는 투쟁의 현장으로 나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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