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나도원(노동당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음악평론가)

 

 

음악듣기 : 김민기 <친구>

 

함께 숨을 쉬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숨을 쉬지 않게 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보이지 않은 노동자들, 그리고 후자의 경우라면 ‘세월호’. 매해 기념식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노래가 되어 호명될 때, 4‧16합창단이 노래할 때, 참석자들은 눈물을 거두기 힘들다.

 

10주기에 이르는 동안 평화로운 애도 의식을 가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7년 전, 3주기에는 음악인들이 추모 공연을 하던 바로 그때, 인근 전광판 고공 농성장 아래 광화문 7번 출구 앞으로 차가운 비와 따가운 햇볕을 가릴 비닐 천막을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으려 경찰부대가 달려들고 있었다. 그날 밤, 그 아수라장에서 실신한 분들 옆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날을 유독 기억하는 이유는 콜드플레이(Coldplay) 내한공연(2017년 4월 15~16일)과 같은 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야에 서울 곳곳에선 열광의 뒤풀이 파티가 열린 모양이었고, 골목에서 우연히 음악계 종사자들을 여럿 만났을 정도였다.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설 때마다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 너무 다른 세상에 현기증이 일었다.

 

 

‘세월호’ 10년을 앞둔 오늘, ‘세월호’ 500일에 남겨둔 메모를 찾아보고는 완벽하게 똑같은 현실에 다시 한탄하고 만다. “세월호 500일,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고, 설악산엔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로 했고, 한미연합군은 사상 최대 화력으로 사격훈련을 했다.” 지금도 어디에선 돈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어디에선 돈을 위해 자연을 죽이고, 어디에선 그 모두의 합보다도 많은 돈을 파란 공중과 붉은 흙더미 위에서 폭발시키고 있다.

 

같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서로 차별해달라고 주장할 정도로 생존 자체가 절박한 시대이다. 같은 노동자가 국적이 다를 뿐인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을 ‘세월호’는 동시대인으로 엮어주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보다 이익을, 생명보다 비용을 우선시한 시장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불안정노동과 정부 기능의 민영화가 낳은 비극이었다. 낡고 곪아버린 시스템의 붕괴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에서도 문제해결은 제자리에 머무르며 크고 작은 참사를 반복해온 현실을 직시한다면, 동시대인의 공동체 의식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면, 진정으로 추모할 수 있고, 서로 받아들이고, 보다 섞여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면, 과연 찾아가서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대상이 예나 지금이나 고작 ‘○○○ 정부’ 수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지난 10년 동안 모두 찾아 쓰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세월호’ 추모곡이 세상에 나왔다. 전혀 무관한 계기로 오래전에 써진, 아주 사적인 노래가 폭넓은 공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바다에서 사망한 후배를 기린, 김민기의 <친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다른 의미를 더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처럼 표면에 뜻을 드러내지 않은 곡들도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역시 기억할 일이다.

 

 

★ 음악듣기(뮤직비디오) : 허클베리 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 이 글은 계간 《황해문화》(2024년 봄호)에 쓴 글 중 일부분을 되살려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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