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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유라시아 횡단기 #7] 별들 많던가요?

유럽을 다녀온 이후 여행 이야기는 나의 주된 레퍼토리로 편입되었다. 물론 ‘1회, 22일’이라는 해외여행 누적 스탯은 누구와 견줘도 빈곤한 편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야 했지만. 어쨌든 시베리아를 다녀왔다는 얘기를 하면 썩 괜찮은 반응이 돌아오고는 한다. 자세히 들어보면 시덥잖은 소리를 매번 늘어놓다, 언젠가 받았던 물음에 딱 한번 말문이 막혔다.

         거기 별들 많던가요?

말할 때 눈이 왼쪽 위를 향하면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 기억을 더듬을 때는 오른쪽 위를 쳐다본다던가. 아니면 그 반대였나. 아무튼 그 때 내 눈은 어느 방향으로 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공명심에 그럼요, 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의 밤하늘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이 없었다. 한 번은 그랬을 법도 한데 정말 그랬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 옆에서 별들 참 많다, 했던 일도 없었다. 잊었는지, 아니면 잊을 기억도 없었던 건지 여독을 풀기도 전에 정신없이 건너온 일 년 사이에 알 수가 없게 됐다.

생각해보면 막연했다. 유럽의 어디서든 그랬지만, 알아들은 말이 그렇지 못한 말보다 훨씬 많았다. 백미러로 보니 코카서스보다 알타이에 가까운 생김의 기사는 버스가 출발한 이후 말이 없었다. 실은 이게 어딘가 팔려가는 건지, 관광지로 모셔지는 건지 내릴 때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다른 도리도 없는 것이 허허벌판의 시베리아였다. 하긴 그렇게 떠나오지 않았던가. 나는 그 빈틈을 여정 내내 다량의 근심으로 채웠고, 버스 안에서도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내 특유의 그 감질나는 습관을 쥐고 있기에

시베리아의 태양은 정말이지 시리도록 밝았다.

두 시간쯤 달린 버스가 잠깐 멈췄다. 멀리 지평선이 보였다. 2차선 고속도로는 그 가운데 소실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오른 편에 있는 휴게소였다. 거기서 본 태양이었다. 햇볕이라기에는 시원하고 햇살이라기엔 날카로운 그것은, 혹한의 맑은 하늘 가운데 내리꽂히는, 다름 아닌 햇빛이었다. 이르쿠츠크 주(州) 어딘가의 햇빛은 그렇게 하늘과 지평선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덜 개인 안개가, 파레트에 파랗고 하얀 물감이 섞이듯 그 사이를 채웠다.

장담컨대 그것이, 시베리아의 정수다. 우리가 연해주의 눈보라에 기함했듯 다른 여행자는 다른 말을 하겠지만, 어쨌든, 그 햇빛을 볼 수 있는 맑은 날이 우리가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게 진짜 있는 거라면, 이게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휴게소에선 간단한 빵 같은 것을 살 수 있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블라디보스톡 시내와 여러 기차역들에서 겪은 느끼한 맛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반값 남짓 되는 가격으로 보드카를 쌓아놓고 팔았다. 기사는 한 칸 뿐인 화장실에 모두가 다녀오고 버스에 다시 타 기다릴 만큼 넉넉한 시간을 줬다. 그 다음엔 보드카를 병째로 홀짝이는 대머리 아저씨를 조수석에 태우고 나서야 출발했다. 그가 옆에서 뭐라고 지껄였지만 기사는 느물느물 웃기만 했다.

호수로 들어서는 선착장에 닿은 것이 오후 두 시께였다. 왼쪽으로 큰 배가 하나 매여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묶였을 배는 얼음으로 갇혀 있었다. 조수석의 남자가 내리고 묶음머리 아주머니가 대신 탔다. 옆의 기사와 뭐라고 바쁘게 말을 하는데, 가끔 우리를 가리키고는 했다. 이거 무슨 거간꾼 같은 사람인건가, 하는 의심만 피어오를 때 아주머니가 별안간 우리에게 먹던 초콜릿을 나눠줬다.

         괜찮은 사람 같은데.

         그러니까.

먹을 것에 유독 후한 나의 성정에 우리가 한 번 피식, 웃고 있으니 기사가 내리라고 했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 조금 기다리니 공기부양선이 왔다. 한 번에 여덟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었고, 아까의 아주머니가 같이 탔다. 부양정은 온통 얼어붙은 호수를 미끄러지듯 긁었다. 창밖을 보니 해가 그새 한참 내려가 있었다.

섬 초입의 선착장에서 또 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 ‘후쥐르(Khuxhir)’라는 마을이 나온다. 우리가 그 버스로 옮아갈 때까지 아주머니는 바쁘게 선장이며 기사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중에 짐작하기론 우리를 그냥 태워다주기 위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섬을 나올 때는 갈아탈 때마다 얼마씩의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홈스테드는 일대에서 제일 유명한, 모두 통나무로 지어진 멋들어진 곳이었다. 아늑한 통나무 벽엔 페치카(벽난로)가 있었다. 거기에 방금 팬 장작을 대러 오가는 턱수염 수북한 직원은 멋진 분위기를 풍겼다. 방 두 개, 2박3일의 숙박비는 만 사천 루블(당시 약 20만 원)이었다. 모스크바에서 3박을 했던 아파트가 비슷한 가격이었으니 시설 치고는 비쌌지만, 관광지라는 걸 감안하면 납득은 됐다.

짐을 풀고 맨 먼저 한 것은 샤워였다. 만 나흘 만에, 영하 삼십 도에 온수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야말로 시베리아의 정수다, 라고 적을 걸 그랬다. 더없이 상쾌한 목욕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아까의 그 햇빛이 저물고 있었다.

누워서 쉬려다 혼자 마을 뒤편으로 나왔다. 마을의 울타리를 넘어 언덕을 내려가면 호수 표면으로 내려갈 수 있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우리의 서낭당 비슷한 큰 나무가 있다. 오방색의 줄을 둘러놓은 제법 큰 나무였다. 불현 듯 예비 삼수생의 축 처진 현실이 다시 다가왔다. 원하는 바를 치성으로 얻으리라는 궁리는 얼마나 얄팍한가, 그러나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몸을 움직였다. 제발 대학 좀 붙게 해 달라고 절을 했다. 두 번 반이 맞나, 잠깐 고민했다.

가파른 내리막 끝에서 직접 밟은 호수는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다. 표면은 매끈하기도 하고, 쩍 갈라져 있기도 했다. 땅과 닿는 부분은 하얗게 일어난 채로 얼어 있었다. 바닥만 보고 걸어가다 문득 앞을 봤다. 저 너머에 산맥이 있었다. 프리모르스키 산맥이던가,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호수의 끝. 아무것도 산맥과 섬 사이를 채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육지부터 디딘 발을 세다 그냥 잊기로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반쯤 어두워진 하늘을 비추는 호수의 푸른빛이 조금 탁해졌다. 문득 돌아본 황토의 섬이 벌써 낯에 설었다. 아까 소원을 구했던 나무는, 여기서 보니 정말 작았다.

자박자박 걷다 걸음을 멈추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가끔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얼음이 다시 얼어서 부딪히는 소리다. 벅찼다. 가슴이 두근두근, 이런 거 말고, 말 그대로 벅찼다. 육척의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 호수는 스스로 외에 어떤 소리를 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도시에서만 평생을 보낸 서울 촌놈이 태어나 처음 겪는 고요였다. 그래서… 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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