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나누기] 나를, 우리를 살림으로써 상대를 이기는 힘

 

 

정상천 (노동당 사무총장, 경기중부지역위원회)

 

 

밥은 힘이 세다. 밥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커지고, 밥을 건네면서 만남의 어색함이 누그러지고, 밥을 함께 먹으면서 금세 동료가 된다. 밥은 살포시 건네는 마음 담긴 편지 같은 것이다.

 

밥으로 다른 세상을 꿈꿔보자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활동을 후원하거나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 밥통의 활동은 2013년 시작되었다. 앞선 밥차들이 겪었던 지속가능성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밥통은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협동조합으로 설계되었다. 후원회비와 농산물을 보내주시는 2백여 명의 후원자들과 시간을 내어 밥과 반찬을 만들고 배식하고 설거지를 거들어주시는 밥알단들이 있다. 밥통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나는 밥통의 시작부터 함께 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은 좀 특별나다. 밥이 끼니를 걱정하는 빈곤한 노인들과 청소년들에게로 향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지하는 현장에, 재개발로 상가에서 쫓겨난 상인들에게,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꿈꾸는 이들에게 밥통은 밥을 건넨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50대, 60대 요양보호사 여성노동자들이 파업하던 때의 일이다. 밥통이 연대의 마음을 담아 밥 해주러 가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파업하는 자신들에게 밥으로 연대하겠다는 제안이 고마우면서도 신기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밥차가 현장에 도착해 밥을 짓기 시작하자 몇몇 노동자들이 손을 보태려 주위로 모여들었다. 우리가 “오늘 밥 준비는 우리가 할 터이니 맛있게 드시면 된다”고 하자 한 여성노동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며 크게 웃었다. 파업하는 와중에도 식구들 밥 챙기는 일을 놓지 못한다는 여성노동자의 말은 이 시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되어 있다.

 

‘연대하면 밥이 나온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투쟁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밥통의 밥이 있으니 연대를 많이 오라는 의미다. 밥통의 활동이 연대하는 이들을 현장에 오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모합창단과 공동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밥통이 투쟁 현장에 가는 날에 합창단이 노래로 연대하는 방식이다. 합창단과 공동 연대하는 날에는 현장 분위기가 한껏 오른다. 밥과 음악이 있고, 20여 명에 이르는 합창단원의 숫자가 주는 든든함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밥통의 활동이 10년 되었다. 한 끼 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밥통의 연대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합창단과의 공동활동처럼 투쟁하는 이들을 위한 연대방식은 더 다양해져 갈 것이다. 한때 밥통의 밥알단으로 함께 했던 임미리님이 밥통의 활동을 멋지게 표현해준 글이 있어 소개한다.

 

 

모든 연대 중 가장 큰 연대가 ‘밥 연대’다.

밥은 상대를 해하지 않고

나를, 우리를 살림으로써 상대를 이기는 힘이다.

가만히 있으되 사그라지지 않는 것.

적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버티는 것이다.

밥통은 지치지 않고 제자리에 있을 힘을 준다.

밥통의 연대는 밖으로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근력을 키우고 그의 마음이 평안해지는 연대다.

그래서 밥통은 바깥으로가 아니라

안으로의 힘을 키워, 죽지 않고 살아서 이기게 하는 연대다.

밥통이 생각하는 ‘다른 세상’에서는 ‘밥통의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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