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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9.

 

원래 가난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집이 그럴듯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 가정의 소득분위를 단정할 수는 없다. 갈색 원목 가구로 온통인 집이야 중산층은 넘어설 확률이 높겠지만 패브릭 소파가 있고 LED TV가 있다고 해서 궁핍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쿠팡에는 10만 원보다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소파도, 55인치나 되면서 30만 원밖에 안 하는 중소기업 텔레비전도 많으니까. 나도 이런 집들을 얼핏 보면 아, 건방진 중산층인가, 라는 대상 없는 증오가 떠오를 때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소파가 없고 TV 크기도 55인치보단 못하니까.

궁핍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 20대 가운데 가난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옷을 기워 입고 양말에 구멍이 난 20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다니는 이는 인간 취급도 못 받을 것이니까. 이를테면 궁핍은 그들의 시간 계획표에서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거의 매번 아침을 거르고 때로 점심까지 거르며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늦게 귀가해 디스코드를 켜고 공모전을 준비하고 주말 아침에는 스터디에 출석한다. 여유 없음, 세상에 맺힌 것이 많음, 상실감, 박탈감, 이것이 오늘 우리 정신이다. 시간을 쪼개는 법, 최선 아닌 차악에 만족하는 법, 성공보다 실패하지 않는 법, 그럴듯한 외양이라도 갖추는 법 따위를 모색하는 데 익숙하다.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고 자조하지만 알고 보면 둘 다 박탈당한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이렇게 살지 않는 청년들도 많다. ‘이렇게 사는’ 20대가 ‘이렇게 살지 않는’ 또 다른 20대의 단면을 SNS로 지켜보는 것은 상실감과 박탈감을 가열히 촉매한다. 거참 쉽게 사네, 건방진 중산층들. 물론 우리가 바보는 아니기에 인스타그램은 걔네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그들도 대단히 노력하며 산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한번 들면 되돌리기 어렵다. 젊음이 그들의 궁핍을 젊은 날 잠깐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요는, 우리가 그 상실의 감정을 어디서 보상받는가 하는 것이다. 뭔가 다른 게 필요하다. 합리적인 소비로 돈을 모으는 건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냉동 앞다리살 10kg와 양상추 열 근, 정부미 한 가마를 쟁여놓고 그것만 까먹으며 살아도 된다. 탄수화물-단백질-지방 균형을 그럭저럭 지키며 두세 달 식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다. 푼돈이나마 모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 돈으로 뭘 어쩌지? 우리는 역시 바보가 아니기에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보고 ‘현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노동 소득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 빠지는 오늘은 선명하고 미래는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른들은 좋은 얘기만 하지만 우리 대신 싸워주지는 않을 것이다.

버스비 2,000원에 벌벌 떨면서 철마다 무신사 도메스틱 옷과 프라이탁 가방에는 너그러우며, 수제 맥주 8,000원에 흔쾌하고 숙취 해소 드링크 5,000원에 기꺼워하며 때로는 주말 모텔비 70,000원을 긁는 까닭, 휴대폰 요금 낼 돈도 없는 주제에 돈을 박박 긁어 뿌링클을 시켜놓고 집 앞 편의점으로 걸어나가 맥주를 사오는 까닭이 이것이다. 마케팅 업계에서 만들어낸 말을 빌리자면 ‘나심비’, 또는 ‘시발비용’이겠지만 진실은 ‘사치품으로 상실감 보상받기’라 해야 옳다. 세상에 대한 원망을 완화하는 분노 억제제라고 할까?

이건 올바른 것일까? 말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분노를 억제하고 심리적으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다. 분노와 스트레스를 삭여, 아낀다면 일주일 치 식비가 될 수도 있는 돈을 오늘 당장 치맥과 술값으로 바꿔먹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누가 그랬던가? 부자들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게 더 쉽다고. 하지만 교수님의 해설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건 더 쉽다. 삶이 팍팍할수록 작고 확실한 위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확실히 해 두자. 모르핀을 원하는 건 우리지, 무슨 지배 계급이 아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20대여, 건방진 중산층을 제외한 모든 빈곤한 청년들이여 단결하라, 그대가 잃을 건 쇠사슬뿐이지만 얻을 건 온 세상이리라… 그러나 뿌링클을 포기해야만 쇠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거라면, 그건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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