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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올라올 때면 꼭 에스컬레이터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은 1번출구로 유턴해 들어오는 연녹빛 버스였다. 더러는 일곱 시보다 일찍 도착한 적도 있었다. 막바지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들은 가로등 앞으로 쌓인 오십 리터짜리 일반스레기봉투들을 치웠다. 덜 녹아서 파랗기만 한 새벽의 한기였다. 혜화역으로 오는 지하철에선 문이 열릴 때마다 찬바람이 밀려들었다. 움츠러든 온몸으로 아무도 없는 셔틀버스에 탔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면 근육이 노곤히 퍼져 졸음이 쏟아지고는 했다.

과 연습실은 예술대학 건물에 있었다. 캠퍼스 끝자락 깎아지른 비탈에 지어져 오 층이 일 층 같고 일 층이 지하 사 층 같았다. 별관이 있어 그 출입구를 합하고 옆 로스쿨과 이어지는 통로까지 보태면 건물로 출입하는 경우의 수는 열 가지가 넘었다. 그러나 이른 아침 학교로 모여들어서 지하철역 앞 셔틀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예술대학 밑 경영관 종점까지를 완주하는 건 우리 학과 사람들뿐이었고, 우리가 이용하는 출입구는 대개 종점 정류장에서 가까운 일 층뿐이었다.

우리 학교는 혜화역에 있었다. 서울의 이름난 거리 가운데 자긍심이랄 게 남은 유일한 곳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로라는 곳이 그랬다. 물론 거기라고 어느 번화가를 가도 있는 가게들이 널려있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배우가 오르고 싶어 하는 빨간 벽돌의 예술극장과 새로 지어져서 흥행하는 상업 연극이 상연되는 큰 극장들이 그들인가 하면 반만 맞는 말이다. 골목골목마다 박힌 소극장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이나 겨우 들어가는 좁다란 계단을 내려가면 탁자 하나에 덕지덕지 붙인 포스터로 티켓 부스를 만들어놓은 곳. 여름이나 겨울이나 무대부터 객석까지가 덥고 습하다. 다닥다닥 붙은 의자에 에어컨 소음조차도 공연에 방해가 될 정도로 소담한 탓이다. 어지간한 공연이 아니라면 지인들의 꽃다발만 가득하고 무한리필 고깃집이 아니라면 뒤풀이를 감당할 수 없는 극단들이라 하여도, 결국은 아르코예술극장이나 동양예술극장의 공연에 참여하는 것이 배우와 연출진들의 목표라 해도 그 지하 극장들은 그 동네만의 진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2번출구 앞 지상으로 올라와 표를 파는 데 혈안이 된 젊은 극단원들, 그와 실랑이하는 잠재적 관객들도 그곳만의 풍경이다. 연극에 관심이 없거나 삐끼류(流) 직업을 유달리 싫어하는 사람도 마로니에 공원의 가로수는 좋아한다. 뒷골목의 주인들은 해발 마이너스 십오 미터쯤 되는 무대에서 먼지를 마시는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라는 건 분명했다. 볕이 제일 잘 드는 공원 복판에 있는 것은 오래된 나무들이지 룸 술집이나 포차가 아니다.

상징 같은 이름들이 퇴색하는 시대였다. 인디 밴드로 배운 홍대는 독립문화와 자유로운 음악가들의 성지였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와 보니 그런 수식을 붙이는 것은 벌써 촌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다. 모든 세대와 계급이 공존할 것 같던 종로도 마찬가지였다. 탑골공원과 YBM을 기점으로 젊은이들과 장년층이 완전히 유리된 공간이 종로였다. 이제 홍대나 종로 다음으로 붙을 접두어는 ‘상권’이었다. 건물주들은 말 그대로 건물의 주인일 뿐 그 거리의 정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더벅머리 가수나 스케이트보더, 조그만 카페의 주인이나 식품집의 아주머니들이 떠나가는 것은 수순이었다.

이를 두고 흔히 일컫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산업구조의 변화나 지가 상승 같은 경제적 문제란 이런 변화의 이유로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2016년의 이야기다. 그때 이미, 언플러그드의 어쿠스틱 라이브나 롤링홀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라이브 때문에 홍대에 오는 인구가 더 많았을까, 아니면 삼거리포차나 그린라이트에서 ‘어떻게 해보려고’ 홍대에 몰려드는 군상이 더 많았을까? 추측건대 한참 옛날에도 후자가 더 많았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 우리 세대가 홍대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냐는 것이다. 헌팅 포차와 클럽이지 은하수다방과 라이브클럽, 버스커들이 아니다. 그런건 본류가 아니라 구경거리로 박제되었을 뿐이다.

오 년이 지난 오늘까지 예술가들은 연희동이나 문래동, 성수동으로 밀려나 시한부 가게를 차렸다. 그러나 그런 곳들마저 인스타그램을 위한 장소로 옷을 갈아입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너무 삐뚜름한 시선인 걸까.

*

그때나 지금이나 연극과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다. 전국의 전공생 가운데 가장 불량한 사례라고 장담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취미에 소비한 돈이나 시간으로만 전공을 정해야 한다면 연극과가 아니라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지난주 내내 넷플릭스로 <펄프 픽션>과 <멜로가 체질> 1화를 겨우 봤는데, 그동안 구독하는 맛집 블로그 25개 중 25개 전부의 최신 포스팅을 매일 확인했다. 증명할 방법은 또 있다. CGV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해본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2019년 6월의 <기생충>이다. 그 직전은 2018년 12월 <보헤미안 랩소디>. 연극판엔 그런 앱 따위가 없으므로 기억을 더듬어보면, 2018년 8월쯤 동기들이 출연한 학교 워크샵을 보러 간 게 마지막인 것 같다.

모두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들-또는 가능성이 있던 친구들-과 갔었는데, 솔직히 말해 이나마라도 극장에 간 것은 그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손쉬운 데이트 코스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게 편리한 일이다. 일단 뭐든 먹어도 된다. 김밥, 치킨, 심지어 부추전을 먹어도 퇴장당하지 않는다. 진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어도 되냐는 논쟁은 옛날 얘기일 뿐이다. 지금 떡볶이나 튀김, 심지어 후각적 매력을 오랫동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입증하고 온 반건조오징어나 핫도그를 버젓이 팔지 않는가? CJ가 죠스떡볶이가 아니라 엉터리생고기를 계열사로 뒀다면 오늘 CGV 커플 세트의 구성품은 [콜라M 2잔 + 카라멜 맛 삼겹살]이었으리라. 파채 추가 500원. 이거 농담 아니다.

하지만 연극이나 영화 관람에서 연인들이 주목할 중요한 장점은 이것이다. 데이트 중인데도 두 시간동안 서로에게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정당한 사유를 준다는 것이다. 권태기 커플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다만 거의 모든 다른 데이트에서는 컨텐츠에 몰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지공방에 가든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든 인왕산을 등산하든, 중요한 건 반지 만들기나 도시락이나 등산이 아니라 대화니까. 매일 이러는 것도 일이다. 극장에서는 입을 쉬게 하고 스크린이나 무대만 보면 된다. 달콤한 말이나 따뜻한 눈빛 따위의 감정노동 가치생산을 하지 않고도 손을 잡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소재와 주제까지 선선히 제공해 준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렇다’. 창작물에 시큰둥한 사람들이 연인을 극장으로 데려간다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말 놀라운 예술이다. 나는 내 전공이 정말이지 자랑스럽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마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야기’에 깊게 이입하는 편이어서, 만들어진 세상의 일에 지나치게 감정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게 두렵다는 것은 둘째다.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 씨가 화면에 홀로 잡힐 때마다 콧물을 훔치거나 <이프 온리> 재개봉관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꼬락서니를 여자친구들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감정 표현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80kg-180cm-280mm의 건장한 신체 스펙으로 그러는 꼴을 이 사회는 마냥 좋게만 봐주지 않는다. 이유가 각각 있긴 했다. 나문희 선생 특유의, 아무 말 없이도 처연한 바스트 샷에서는 외할머니 생각에 혼났고 폭우가 쏟아지는 <이프 온리>의 클라이맥스에선 그전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떠올랐었다. 이때는 너무 울어버린 탓에 좀 곤란했다. 망했네, 이따가 뭐라고 대답하지.

그럴 때마다 그녀들은 놀랐고, 역시 연영과라서 감정이 풍부해, 같은 말을 건네주었지만 그건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기에는 좀 부끄럽거든.

나는 어렵게 입시를 뚫고 들어온 동기들처럼 연극이나 영화라는 게 좋아서 죽고 못 살 지경이 아니었다. 뒤늦게 먼길을 돌아 연기를 선택해서 돌아갈 다리를 불태운 처지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한 것은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 여남은 편이나 브레히트와 아서 밀러의 희곡 몇 편이었다.

길동무들과 떠났던 유럽 여행의 피날레는 베를린이었다. 친구들을 프라하에 두고 유로를 긁어모아 떠난 이유는 브레히트 극장이었다. 1박 2일 동안 하리보 젤리로 점심을 때우며 찾은 마지막 장소였다. 브레히트가 만든 베를리너 앙상블의 전용 극장 ‘쉬프바우어담’. 당연히 공연을 보고 돌아오지는 못했다. 전날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에 베이컨을 추가하고 1유로도 안 하는 하리보 200g의 가격에 흥분해 여섯 봉지씩이나 산 통에 지하철 탈 요금도 모자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곡이란 것을 막 공부하기 시작하고 <사천의 선인>과 <서 푼짜리 오페라>를 –마치 열다섯 무렵 <미국민중사>를 읽을 때 그랬듯- 지적 허영에 젖어 읽어봤다면, 팜플렛 두 장을 슬쩍해오는 것만으로도 진짜 연극학도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로만의 표지로 여전히 남은 극장들 사이를 공강 시간에 돌아다닐 수 있다면, 나는 자긍심 가득한 예술대학생일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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