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씬’의 이야기부산 국도예술관을 거쳐 나의 발걸음을 광주까지 이끌었다.

광주광역시 충장로 골목, 여기에는 영화에서 잠시 소개된 극장이 있다. 네이버지도를 따라 골목안으로 들어가 보면 곧 철거될 지도 모를 듯한 허름한 건물이 나타난다.


1935년에 광주에 조선인이 최초로 세운 극장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인 광주극장

좌석 1200여석의 대극장(1997년 좌석 교채작업으로 825석이 되었다고 한다) 으로 요즈음 같은 멀티플렉스 시대에도 좌석을 다 채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에도 단관극장(한 영화관에 스크린 하나만 존재하는 극장)을 고집하는 옹고집극장. 2015년 박근혜정권의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으로 수많은 극장이 지원금을 얻기 위해 굴복했을 때도 이를 거부하고 후원회원으로 버티고 있는 오직한길 극장. 이 때문에 연평균관객 1%대 좌석점유율을 자랑한다는 경제관념 제로극장.

* 박근혜정권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 – 영진위가 선정한 24편의 영화 중 매월 2편을 골라 주말 프라임타임(낮 12시 이후)에 12차례 상영해야만 지원금을 주는 제도

2003년부터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되는 독립영화계에서는 알려진 극장이지만, 간판도 멀리 떨어져 세워진 이 남루한 건물을 보고, 과연 여기가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극장을 마주한 설렘과 함께 혹시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참고로 필자는 숫기가  없는 성격)을 움켜쥐고, 광주극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바깥쪽 매표소


안쪽 매표소

과거 매진될까 가슴 졸이며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을 매표소. 지금은 안쪽에 별도 매표소가 있다. 입장권을 미리 받고 극장안을 둘러보았다.

상영관으로 이어지는 출입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화장실로 이어지는 측면 복도 모두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화장실만은 신식으로 리모델링되어 있으니 안심하시길) 스크린에 쏘아지는 영사길 불빛에 머리가 부딪칠까 조심하면서 허리를 숙이고 옆문으로 나와 화장실 가던 추억이 떠올라 가벼운 미소를 내 얼굴에 선사한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옛 영화관의 모습이 상당부분 보존하고 있는 이 영화관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그리고 여기 운영자들은 영화관 구석구석 자투리 공간에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 전시물과 소박한 카페, 그 외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펼쳐 놓으셨다.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성과 배려가 관객이 없어 쓸쓸할 수도 있는 이곳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가 아닐런지.


2층 전시 공간


1층 전시 공간


전시 공간


1층 대기좌석


간이 카페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스크린 앞에 정겨운 문구 ‘기억세월호, 사드아웃’이 눈에 띤다. (사드아웃은 간판조명이 꺼져있어 사진에 찍히지 않았음) 평일 오후 늦은 시간과 코로나사태의 합작으로 완성된 완전한 ‘혼영’ (혼자서 영화보는 것을 넘어 영화관 안에 나혼자) 상영한 영화는 ‘내언니전지현과나’.(이 영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겠다.)

 

영화 ‘라스트씬’에서 극장주는 개관 100주년이 되는 2035년까지 극장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시대에 역행함을 알면서도 이 극장을 계속 운영하려는 이 분들의 고집은 도대체 어떤 고집일까? 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고집일까?

관객들의 기호에 맞추어 흥행에 성공할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현실과 다른 거짓을 풀어야 하는 제작자. 그러한 영화에만 투자하고 유통하는 투자자와 극장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 돈을 벌기 위해 과거의 기억 따윈 철거해버리는 폭력과 파괴가 난무하는 이 세상.

돈이 된다면 뭐든지 없애버리는 이러한 세상에서도 사람에게 간직하고픈 옛 추억, 첫 사랑의 기억, 그리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자리는 필요하다고 광주극장은 고집스레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은 비어있는 좌석마다 느껴지는 싸늘함이 영화와 추억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온기로 채워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광주극장의 아직도 단관으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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